앞서서
전통적인 소설 쓰기의 정석같은 느낌이 드는 이야기야.
예상치 못한 반전이 세 개나 있고
병적일 정도로 세세한 묘사들,
거시적인 세계와 미시적인 세계의 절묘한 교차,
소설과 작가가 현실을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사유까지.
이렇게 정교하고 전통적인 작법으로 쓰여졌으면서도 심지어 엄청나게 재밌다구!!
600페이지에 달하는 양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어.
역시 유명한데는 이유가 있다니까.
이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한다면
몇 날 며칠 수다를 떨 수 있을만큼 진짜, 진짜로 재밌고 할 말이 많은 이야기야!
내용
줄거리
1935년 귀족 집안의 막내딸, 열 세살의 소녀 브리오니.
망상에 상상력을 가지고 소설을 쓰는 평범한 소녀.
아직 소녀도 어른도 아닌 보수적이고 지루한 교육을 받은 평범한 소녀.
그런 브리오니의 집에 이혼한 이모의 자식들이 오게 된다.
열 다섯살의 관종끼 있는 소녀 롤라,
아홉살 난 쌍둥이 형제들.
한편 브리오니의 언니인 세실리아와
집안 일을 해주는 여자의 아들인 로비와 묘한 기류가 생성된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온 이들이 썸타기 시작한 것.
큰 오빠인 레온이 집에 오던 날
세실리아와 로비의 애정싸움을
로비의 폭력이라고 오해한 브리오니는
이튿날 일어난 롤라 강간 사건의 범인을 로비라고 지목하고
이 때문에 로비는 감옥에 갔다가 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이 일로 세실리아는 가족과 등을 지고
브리오니는 자신의 실수로 인한
언니와 로비의 괴로운 상황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브리오니의 평생에 걸친 속죄가 시작되는데...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되고 얼마 안 되서
잘난척 하기를 꽤 좋아하는 지인이 이언 매큐언의 칭찬을 너무 하는 거야.
그 땐 먼다도 아직 어렸기 때문에 뭔가 꼴보기 싫은 기분이 들었어.
쳇... 허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작가로구만!
요딴 생각을 했던 거지. ㅋㅋㅋ
그래서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보게 됐어.
아... 좀 더 빨리 볼 걸!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소설이었어.
1부가 266페이지인데 이게 단 하루만에 일어난 일이야.
하지만 지루하지 않아.
여기에 각각 다른 나이의 여자와 남자의 묘사가 정말 치밀해.
게다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아마 누구나 욕설이 튀어나올만큼 깜짝 놀랄 반전을 맞이 하잖아.
이 반전은 단 한줄로 이루어져 있어.
아... 너무 강렬한 반전이라 어떤 건지 말을 못하겠네 ㅋㅋㅋ
패잔병이 된 로비의 시점에서 쓰여진 2부도 너무너무 좋았어.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이런저런 분석들,
섬세한 감상들이 아주 많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스포는 피하면서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얘기를 하려고. ㅎㅎ
열 세살의 브리오니와 열 다섯살의 롤라에 대한 이야기야.
성인이 되기 전에 아이들은
어떤 면에서 굉장히 짐승같을 때가 있는 것 같아.
이것도 일종의 권력 싸움인데.
이 나이 또래의 권력이라는 것은 어른들의 관심이지.
그렇게 어른이라는 관객들을 앉혀놓고
무대의 중앙에서 주인공이 되는 것 말이야.
두 살이 더 많기 때문인지, 상황 때문인지 롤라는 브리오니 보다 능숙해.
그걸 인정하면서도 브리오니 역시 우위를 잡고 싶어 하지.
그래서 롤라가 약해 보이는 순간
(-_-; 약해 보이는 척 했던 것 같지만)
우위를 잡기 위해서 비밀을 공유하고
갑자기 방패처럼 그녀를 막아서잖아?
이 대목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반추해 봤거든.
진짜 롤라 같은 아이도 브리오니 같은 아이도 너무 많은 거야!
롤라 같은 애들 좀 재수 없잖아.
그래서 엄청 싫어했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재수 없어서 그렇게 안 했다기 보다
하고 싶어도 롤라처럼 될 수 없어서 안 한 것 같기도 해.
그렇게 재능의 관종끼 앞에서
평범한 아이들은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잖아.
걔보다 잘나고 싶어서 거짓말도 하고
어설프게 꾀병을 부려서 아픈 척도 하고...
그래 봐야 이불킥하는 창피한 기억들만 쌓이지.
어쩌면 브리오니처럼 먼다 역시
누군가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줬을지도 몰라.
아... 정말그 시절에 너무 큰 죄를 짓지 않고
어른이 되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기억만 안 나는 거면 어떻게 하지? -_-;;)
죄에도 임계점이라는 게 있는 걸까?
그래서 임계점이 넘어서면 아예 죄의식이 사라지는 걸까?
주변을 보면 죄의 크기와 죄책감이 반비례 하는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하게 돼.
물론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야.
소설이 현실을 보완하거나 미화하는 것도 늘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그리고 가능하다면 용서를 해 줄 수 있는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게 돼.
앞으로도 무결한 사람이 될 자신은 없으니까
어떤 죄가 생기면 가능한 빨리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싶고
누군가를 용서할 용기도 있었으면 싶어.
아... 사실은 거짓말인 거 같아.
아무 죄와도 부딪치지 않으면서 살고 싶어. -0-;;;
용서를 구할 용기도 용서를 할 용기도 없을 것만 같아.
진짜...
롤라처럼 뻔뻔하게 살 자신도,
브리오니처럼 자신의 죄를 곱씹으며 살 자신도 없으니
도대체 어쩜 좋을라나 모르겠어.
쥐며느리처럼 음습한 그늘 땅에 폭 파묻혀 살던지 해야지 원.
영화에서도 책에서도 인상깊었던 장면은
간호사가 된 브리오니가 뇌를 크게 다친 병사에게 거짓말을 하는 대목이었어.
브리오니를 다른 여자와 착각하는 그에게
이제 곧 죽게 될 그 사람에게 해 주는
브리오니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친절이었던 거짓말.
어쩌면 그 기억 때문에 브리오니는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나라는 사람을 믿고 기다려주기를 희망하게 됐지.
아마 세상 모든 이들이
어떤 날에는 누군가에게 음해를 받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참을 수 없는 불운을 맞게 되기도 할 거야.
그들 모두에게...기다리는 사람이 있기를.
그리고 이윽코 그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기를...
먼다의 추천
이 책은 어때?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사실과 상상에 대한 또 다른 아름다운 이야기.
파이 이야기는 종교적 색채가 더 해지긴 했지만
속죄처럼 창작되어진 이야기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야.
유명하기도 하고 또 재밌기도 한 소설이라 강력추천이야!
이 영화는 어때?
조 라이트의 어톤먼트
영상이 굉장히 아름다워서 볼만한 영화야.
하지만 역시 원작을 먼저 보고 봤으면 싶어.
먼다도 소설을 먼저 보고 봤어.
각각의 장점이 있는데 텍스트가 담고 있는 양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깊고 넓거든.
이 영화에서도 베네딕트 컴버비치는 못생김을 연기했지 뭐야;;;
*모든 책의 낭독 분량은 10페이지를 넘기지 않습니다.
-BGM 출처
by site : 공유마당 저작권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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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BY-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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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