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애플 북스

앞서서

유명한 한국 근대 소설가들이 참 많잖아.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도 엄청 실려 있고.

김동인, 김유정, 이효석, 염상섭 등등..

사람마다 좋아하는 작품도 다 다르겠지.

 

그 중에서 먼다의 원픽은 현진건이야.

이러저러한 학구적, 사회적 의미도 있겠지마는

그보다 수십년이 흐른 지금 읽어도 너무 재미있기 때문에 원픽인 거지!

 

장편인 무영탑도 재밌는 이야기이지만 단편들이 훨씬 좋았던 것 같아.

대부분 다 블랙 코미디인데 가벼우면서도 한 방이 있어.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비참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다

40대 초반에 생을 마감했던 현진건.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반짝이는 유머가 살아있어.

아무리 짧은 소설에도 아이러니가 숨어있지.

 

'왜 먹지를 못하니."의 밈으로 유명한 운수 좋은 날은

누구나 다 알테니까 그 보다 조금 덜 유명한 단편 세 가지를 소개할게.


 

내용

할머니의 죽음


할머니가 임종을 앞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가 친척들이 고향집으로 몰려든다.

가족들은 할머니의 임종에 슬퍼하고

이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을 꾸짖기도 하고 

다들 자신이 제일 효자인 것 처럼 난리 법석이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할머니는 돌아가시지를 않는다.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지나도...

아니 오히려 기력을 되찾는 것만 같다.

누군가는 임종 소식에 부의금도 미리 받아오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되니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는게 아쉬운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식구들은 다시 흩어졌다.

 

가족들이 모두 돌아간 어느 따수운 봄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시대 보정 거의 없이도 공감이 확 되는 이야기였어.

오랜 시간 간병을 경험해 본 이들이라면

혹은 큰 어른의 임종을 지켜 본 이들이라면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

 

흔히들 그러잖아.

부모님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살아계실 때 잘 해라.

...하지만 그들도 그들의 부모님들이 살아계실 때 잘 못해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자너.

 

그걸 누가 모르겠어.

살아계실 때 잘해야 하는 걸.

잘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우면 왜 못하겠어.

무엇이든 언제 끝난다는 것을 명확히 안 다면,

우리는 더욱 분발할 수 있겠지.

 

자기 희생이 들어간 사랑 역시 유통기한이 있다면

아마 훨씬 많은 사람들이 더 절절하게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는 알지 못하잖아.

그러니 옆에 있을 때 잘 해 같은 피상적인 말은 의미가 없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탄생과 소멸은 찰나이고 존재가 훨씬 긴 걸.

그러므로 존재하는 것들에 이따금씩 감사할 수 있는

작은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걸로도 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운 흘긴 눈


젊고 예쁜 기생 부잣집 사내와 만나 살림을 차린다.

부잣집 도련님은 원래도 허랑방탕하게 살던 이라

기생과 함께 살면 돈을 물쓰듯이 쓰게 된다.

살림을 차려 낭비벽도 두 배가 넘으니

사내의 부모도 두 손 두 발 다 들어 버리자 사채까지 손을 댄다.

영악한 기생은 그걸 다 알지만

뭐... 그건 사내의 일이니까 하고 그냥 같이 써 제낀다.

그러다 사채빚으로 협박까지 받게 된 사내.

사내는 기생에게 나 죽으면 어쩔꺼냐고 묻고

기생은 당연히 같이 죽겠다며 여전히 소꿉장난질이다.

 

사내는 마음을 먹은 듯 환약 두개를 가져와

자신도 먹고 기생에게도 먹인다.

사실 기생은 진짜로 따라 죽을 생각은 없었기에 조금 당황한다.

기생은 약을 삼키지 않았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사내가 괴로워 하는 행동을 따라한다.

그러다 사내가 문득 기생은 살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뱉으라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가 

죽어가는 순간 그녀는 약을 삼키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이게 줄거리로만 보면 되게 어두운 얘기같은데

소설은 아주 가벼운 필체로 쓰여 있어.

 

가끔 우리는 자신을 사랑해줬으면 하는 상대에게

진심을 물어볼 때가 있어.

상대가 그렇다고 대답해주면 안도하게 되지.

 

하지만 저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잖아.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타인의 진심을 알 수는 없다는 걸 말이야.

 

그러니까 관계에서는 타인의 진심보다

자신의 믿음이 훨씬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싶어.

 

그리고 사실 진심의 무게도 각각 다르잖아.

누군가의 진심은 심연처럼 깊고

또 누군가의 진심은 개울물처럼 얕은 걸.

무게와 깊이가 다르다고 진심이 아니라고 매도할 순 없으니까.

 

타인의 죽을병 보다는 자신의 감기가 더 아픈 법이라잖아.

아픔도 사랑도 결국은 주관적인 것이라는 얘기겠지.

그러니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진심은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 뿐이겠지.

 

그래도 부디 모든 사랑들이 너무 기울어져 있지는 않기를...

 

동정


나는 제법 도덕적이고 예의바른 학교 사람이다.

비가 오는 진창길에 여러 곳을 들러야 해서 할 수 없이 인력거를 불렀다.

이런 궂은 날에 그냥 걷기도 힘든 것을

인력거를 끄는 이는 얼마나 힘들 것이냐.

나는 인력거를 끌며 밥벌이를 하는 이가 안쓰러워 미안함 마저 느낀다.

그래, 고마우니 삯이라도 넉넉히 쳐 줘야지.

그래, 고마우니 너무 험한 길이 나오면 내려야지.

이렇게 선하디 선한 마음으로 앉아 가는데

오르막길에서 작은 사고가 일어나 인력거가 부숴지고 만다.

순간, 그가 내게 부서진 인력거 값을 덤탱이 씌우지 않을까 걱정이 되고 만다.

그래서 내가 중간에 내리겠다고 하지 않았냐고...

나는 면피를 위해 그런 말을 뇌까리고 

대충 삯을 지불하고 자리를 피해 버린다.


누군가가 불쌍하다... 

그럼 감정이 드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아.

누군가를 동정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면 먼다도 모르게 섬뜩해지기도 해.

아마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화자같은 마음이 들어서겠지.

 

특히 아무런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말이나

마음 뿐인 동정은 정말이지 한 푼어치의 값어치도 없다고 생각해.

 

스스로가 아무 짐도 지지 않은 채

어머 저런... 세상에 가엾기도 해라

이런 마음은아니 한 만 못하지.

 

하지만 그런 마음이 자꾸 드는 이유를 알고는 있지.

그런 마음이 든다는 건

적어도 먼다는 안전한 곳에 있다는 뜻이거든.

 

그래서 섬뜩해 지는 거겠지.

스스로 이 곳과 저 곳의 경계를 나누고 있는 거니까.

그 경계가 무너지면 아주 잽싸게 상대를 밟고 안전 지대로 들어가 버리겠지.

 

이런 이야기가 무려 100여년 전에 씌여진 거야.

정말이지 현진건은 대단해!


 

먼다의 추천

이 책은 어때?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스타일도 다루는 내용도 시대도 다르지만

그 시니컬한 유머가 살아있는 박완서의 단편집이야.

그러고 보니 이 단편집에 있는 도둑맞은 가난도 밈이 되었네.

훌륭한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

물론 재미도 빼놓을 순 없겠지!


이 영화는 어때?


 

 

김현석의 YMCA 야구단

이 영화도 무려 20년 전 영화네.

아이 깜짝이야... 이렇게 오래된 영화였다니...

시대적 배경 외에는 이렇다할 연관성이 없긴 하지만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중에서

소재도 눈에 띄었고 당시의 젊은이들에 대해서 그린 것도 좋았어.

자전차 왕 엄복동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

연출이 다소 옛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볼만 하다고 생각해!


*모든 책의 낭독 분량은 10페이지를 넘기지 않습니다.

*BGM 출처

title : O (OH!) Medley Intro - “Just the ross”

authr : 한국저작권위원회by

site : 공유마당 저작권 위원회
is licensed under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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