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위하여

박완서의 그리움을 위하여/ 문학동네

앞서서

문학동네에서 나온 박완서의 단편집 중 맨~ 마지막 권이야.

시기적으로 보면 2000년대지.

생의 후반기에 쓰여진 단편들이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여전히 반짝반짝하고 잘 읽혀.

초로를 넘어선 작가에게 쓰면 안 될 말이겠지만

심지어 발칙함 역시 여전해. (-0- 죄송해여 박완서님...)

 

그래서 여러 번 읽었도 

마지막 권의 책장을 열면 항상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박완서의 신작을 더 이상 만날 수 없으니까.

 

이 마지막 단편집 중에서 세 개의 단편을 소개할게!


내용

그 남자네 집/ 2002년 문학과 사회


6.25전후로 만난 첫사랑 그 남자.

자유와 사치에 목말랐던 그 때 치열했고 가난했고 비겁했던 우리.

노년이 되어서도 그 남자가 살던 동네를 가면

마치 어제 일이었던 것 처럼 뻐근하고 생생했던 우리의 기억.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이었고

또한 나는 살아남고 싶었기 때문에

평탄하고 안전한 선택을 한 후 나이를 먹었다.

지금 그 남자를 기억하면서,

그 때의 우리를 기억하면서,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렇게 젊음이, 인생이 그래도 지나갔다. 


사실 그 남자네 집에 나온 소재는

박완서가 여러번 반복해서 써 왔던 이야기야.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신의 이야기.

그 시절의 사랑과 그 시절의 이념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같은 소재를 변주하는 솜씨가 기가 막혀서

아무리 반복해도 지루하지가 않아.

 

특히 그 남자네 집은 이렇게까지

깜찍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표현들이 많이 나와.

사실 우리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임신에 대한 공포를 대신하는 말이라든가,

극장에서 추위에 떨던 발에 털 장갑을 씌워 주는 장면이라든가 기타 등등.

 

사실 이 시대의 이야기라면

더군다나 자전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무겁고 근사하게 만들려고 애쓰기 마련인데

박완서의 이야기에는 그런 애씀이 없어.

자신의 이야기든 주변의 이야기든 언제나 시니컬하지.

 

그래서 읽다가 보면 

50년대 배경의 이야기인데도 동질감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쿡쿡 하고 웃음이 베어나오다가

어느 부분에 이르면 정말이지 쿡... 하고 가슴에 둔통이 오기도 해.

 

종종 박완서가 자기 복제를 많이 한 작가라고 비판? 하는 사람들도 있어.

 

하지만 이런 식의 자기 복제라면 100편이라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거저나 마찬가지/ 2005년 문학과 사회


영숙이 이십 대 초반 공장에서 일할 때

고등학교 선배인 운동권 언니를 만나게 된다.

언니는 너희들과 달리 자신의 선택?으로

공장에 왔다면서 선동전단의 윤문을 영숙에 맡기며 끌어들인다.

 

그랬던 언니는 과거 운동권들이 

잘 나가던 틈을 타 쾌속으로 성공하게 된다.

그러니까 자본주의적으로 성공했다는 얘기다.

민중을 위한다던 언니가 민중이 아니니까 민중을 사랑할 수 있는 거라며...

좋은 말로 영숙을 꼬드겨서 대필을 시키고

거저나 다름 없다며

돈 오백에 시골 별장을 맡기는 일을 시키고

거저나 다름 없이 살게 해 준 대가로 친구들을 별장에 데려와 영숙을 막 부려 먹고....

 

나원참.

거저면 거저지 거저나 다름 없는 게 대체 뭐람.

게다가 영숙의 남자친구 기남도 그렇다.

공장에서는 그렇게 쓸만한 기술자였는데...

가족이나 다름 없는 친척이라며 데려가서

가족이니까 힘들 때 도와야 한다며 완전 공짜로 사람을 부려먹고.

 

정말이지 이봐요들!

가족이면 가족이고 아니면 아니지

가족이나 다름 없는 게 뭐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운동권 언니는

애초부터 뭐 대단한 뜻이 있어서 했다기 보다

시대의 편승하는 그냥 부잣집 딸내미 같은 역할로 나와

그러니까 그런 부류의 허위를 폭로하는 이야기고

돈을 쥐고 있는 자들의 알량한 도덕주의 같은 걸 비꼬는 뭐 그런 이야기야.

 

언젠가 어떤 정치인인이 이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86 운동권들에게 권한다며

그 당시 운동권들이 지금 다 헤쳐먹으며

민중들을 거저나 다름 없이 이용하고 있다고 했어.

그러면서 상대 정당은 싸잡아 기득권이며

너네가 이 나라를 망쳐 놓았다는 듯이 일독을 권한다고...

 

...먼다는 구역질이 났어.

박완서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무결한 내가 흠많은 너희들 부끄러운 줄 알아랏!

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을 거야.

겨우 그 따위 생각을 전하기 위해 박완서라는 이름을 이용하다니 최악이야!

 

오래 전 인민군과 국군이 서로 서울을 차지하면서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그이를

양쪽으로 분절된 이데올로기라면 치를 떨 그이의 이름 석자를 어떻게...

 

박완서는 우익이든 좌익이든

이 쪽이든 저 쪽이든 어느 편을 들지도 않을 뿐더러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존에 대해 말했던 사람이야.

 

운동권이든 반대편이든 심지어 그이 자신에게 조차

그 시선은 늘 공평했단 말이야!

 

정말이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_-;;;;

 

대범한 밥상/ 2006년 현대문학


남편을 먼저 보내고 죽음을 앞둔 늙은 나.

남편은 깔끔하게 유산 정리를 잘 했는데

물려 준 유산 때문에 자식들의 삶이 더욱 시난고난해진 것만 같다.

 

그러나 남편처럼 깔끔한 성격이 아닌 나는

대체 이 유산을 어떻게 남겨줘야 할지 모르겠다.

없는 녀석을 더 줘야 하나, 공평하게 줘야 하나.

잘못하다 세금으로 다 뜯겨 버리는 건 아닐까?

 

그러다 문득 생때같은 자식을 비행기 사고로 잃고 손주들을 키웠던 경실이 생각난다.

자식들이 죽고 사돈 어른과 한 집에 살며 

그렇고 그런 소문도 돌았던 경실.

손주들을 유학 보내고도 두 내외?가 함께 살다

사돈 양반이 먼저 죽고 이제는 혼자 된 경실.

 

그녀는 그 큰 사고들과 그 뒤에 남겨진 것들을 어떻게 정리했을까?

나는 경실을 만나 노하우를 좀 들어보려 한다.


남겨진 자들은 늘 치열한 법이라

밥 알 한 톨이라도 남겨 놓고 가면 상당수가 아귀다툼이 되곤 해.

우리는 주변에서 그런 꼴들을 많이 보지.

 

그래서 떠나가는 자들은

자신이 남길 것들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해.

이게 남겨진 놈들에게 골고루 갈까?

이게 남겨진 놈들에게 해가 되진 않을까?

혹시 이것 때문에 날 빨리 떠나게 하려는 건 아닐까?

뭐 기타 등등...

 

하지만 결국 남겨진 건 남겨진 자들의 몫이지.

분배나 행.불에 관한 것도 그들의 몫이야.

떠나갈 자들은 자신들이 머물러 있을 때,

바로 그 동안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사별이든, 통상의 이별이든

사람이 난 자리에는 반드시 어떤 흔적이 남는데

그 흔적을 메꾸는 것은 떠난 사람들이 할 수 없을 테니까.

 

하긴 뭐...

이렇게 말로 씨부리는 거야 쉽지.

막상 당사자가 되면 이렇게 초연할 수가 없겠지.

 

언젠가 떠나갈 때가 다가왔을 때

너무 겁먹지 않고 이후를 너머 걱정하지 말고

지난 동안처럼 꼭 필요한만큼

선선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기를 바랄 수 밖에.

 


먼다의 추천

이 책은 어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운수 좋은 날이야 워낙에 유명하니까 모두 알겠지.

그 놈의 먹지를 못하는 설렁탕 말이야 ㅎㅎ

근데 그 외에도 현진건의 좋은 단편들이 진짜 많거든?

일단 너무너무너무 재미가 있어.

박완서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그 발칙함이 현진건의 이야기 속에도 있어.

도저히 1900년에 태어난 이의 센스 같지가 않다니까!

좋은 세상에서 오래 사셨으면

진짜로 재미진 이야기를 많이 남기실 수 있었을텐데...


이 영화는 어때?


임대형의 윤희에게

2019년작

그 남자네 집을 읽었을 때

전혜린이 떠오르기도 했고 

더불어 이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어.

각자 다른 상황, 다른 고민과 맞서

다른 삶을 살아갔던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그들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마치 상급학교를 진학하듯이 착착, 자연스럽게...

박완서가 말했듯 

아, 그 때 나는 새대가리였구나!

 

하지만 그렇게 짹짹짹 작은 새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들, 그리고 어쩌면 우리.

그리고 늘 그렇듯 삶은 계속 되지.


*모든 책의 낭독 분량은 10페이지를 넘기지 않습니다.

-BGM 출처

title : Cloud authr : 유민규

by site : 공유마당 저작권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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